새알 뉴스레터 #23 | 2025. 6. 26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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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질문 💭
[오늘의 레터와 친해지기 위한 준비운동]
둥지님은 1987년 서울의 6월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나요?
(🦦: 부끄럽게도 저는 6월 항쟁을 역사적 사건으로만 기억했던 것 같아요.
감사한 마음만 존재했지 잘 알지 못했어요. 하지만 이번 레터를 계기로 책도 찾아보고,
영상도 보고, 당시 기사도 읽으며 엄청 공부할 수 있었답니다. 잘 알고나니, 이제는
앞으로의 6월을 더 잘 보낼 수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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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알맹이 💥
[오늘의 레터 코너별 요약]
메인🪺 | 민주주의 3부작 중 ‘과거’ 파트의 레터로, 현재의 민주주의가 누구에 의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되돌아볼 수 있는 글이에요.
새참🫦 | 민주시민들의 공동체를 위한 용기를 지지하고, 그들의 공동체를 향한 사랑을
이해하는 에디터들의 이야기를 담았어요.
청바지👖 | 뮤지컬 <소란스러운 나의 서림에서>를 보고 느낀 점을 시대 상황과
연결해 이야기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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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소 6월의 봄이 오기까지 🌺
[메인컨텐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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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에디터 수달입니다. 저는 아직 2025년이라는 숫자도 어색한데 벌써 올해의 절반, 6월의 끝자락이에요. 그다지 반갑지 않은 장마도 시작되었구요. 둥지님은 6월을 어떻게 보내셨나요?
새알은 장마가 시작되기 전부터 6월 전반에 걸쳐 긴 호흡으로 ‘유난 무브먼트’의 레터를 발행했었지요. 소중한 이야기들을 꾹꾹 눌러담았던 만큼, 둥지님도 유난 무브먼트를 다르게, 또 다정하게 기억하고 계실 거라 믿어요.
저희는 유난 무브먼트의 레터를 담은 후 ‘좋은 어른’에 대해 새롭게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우리는 지금 당장 어떤 청소년이 되어야 할지, 현 사회에서는 어떤 어른이 필요할지, 그래서 우리는 어떤 어른이 되고 싶은지 등의 이야기를 나누었지요. 그리고 이때 가장 고민하게 된 지점은 바로 ‘민주주의’와 ‘민주시민’이었어요. 유난 무브먼트의 슬로건 중 “젊은 어른들이 주도하는 넥스트 민주주의”라는 문장이 있거든요. 그러고 보니 저희가 지금껏 외쳤던 좋은 어른의 모습도 민주시민의 의미에 포함되어 있을 수 있겠다 싶었어요. 민주시민에는 크게 보면 존엄성, 주체성, 책임, 의사결정, 더불어 사는 삶 등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으니까요. 그래서 한 걸음 더, ‘민주주의란 무엇일까’, ‘우리가 주도해야 할 넥스트 민주주의란 어떤 모습일까’에 대한 고민으로 흘러가게 되었답니다.
지난 겨울 훼손되었던 민주주의와 이를 되찾고자 했던 움직임 속에서, 그후 다시금 출발점에 서서 좋은 청소년, 좋은 어른이라는 꿈을 품은 우리는, 한껏 부푼 마음과 긴 호흡으로 민주주의를 이야기해보려 해요. 총 3부작 특집 레터로 준비했습니다.
- 과거—우리는 어떻게 민주주의를 지켜냈는가,
- 현재—사람들에게 민주주의는 어떻게 인식되고 있는가,
- 미래—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민주시민이 될 수 있을까. (3부에는 둥지님들께 글을 기고받을 예정이니 미리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오늘은 우리가 어떻게 민주주의를 지켜냈는지 과거의 이야기부터 고민해보려 해요. 그럼 함께 역사 속으로 돌아가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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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4년 겨울, 윤석열 전 대통령은 전국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했습니다. 계엄을 선포하며 함께 발표했던 포고령에는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하고, 언론과 출판을 통제한다’는 내용 등이 있었어요. 마지막 6번으로는 ‘선량한 일반 국민들은 일상생활에 불편함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조치한다’고 덧붙였고요. 한편 44년 전 1980년 신군부 세력이 발표한 계엄포고령에도 이와 비슷한 문구가 존재했습니다. “바. 국민의 일상생활과 정상적 경제활동의 자유는 보장한다”라는 항목이었지요. 이렇게 우리는 역사를 통해 알 수 있었습니다. ‘바’는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그래서 ‘6번’ 또한 절대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요. 다행히 빠르게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통과되며 선포는 무효화되었고, 시민들은 이후 하나둘 거리로 모여들었어요. 과거를 알고 있었기에 공포에 떨 수밖에 없었지만, 그랬기에 빠른 대응과 탄핵까지, 민주주의의 시간을 다시 흐르게 할 수 있었지요. 과거가 현재를 돕는 순간이었습니다. (참고로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는 한강 작가님이 노벨문학상 강연에서 언급하셨던 질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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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건국 이후 최초로 일어난 민주화운동은 대구에서 일어난 ‘2.28 민주운동’이에요. 이승만과 자유당 정권이 야당 후보 유세를 방해하기 위해 학생들의 일요일 등교를 지시한 것이 발단이었고, 이를 항의하고자 대구 지역 고등학생들은 대한민국에서 처음으로 민주주의를 외쳤어요. 이 사건을 계기로 학생시위가 전국적으로 확산되었으며, 마침내 4.19혁명으로 이어졌습니다. 혁명을 통해 이승만의 하야를 이끌어내었으나, 곧바로 1년 뒤 박정희를 필두로 5.16정변이 발생했어요. 하지만 이때도 국민들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독재 정권에 맞서 계속해서 목소리를 내었지요. 이렇게 대한민국은 억압과 독재로부터 해방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 희망의 시간도 그리 오래가진 못했습니다. 전두환 신군부세력이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장악했기 때문이에요. 그러자 광주의 시민들은 5.18 민주화운동을 일으켜 세력을 거부하고 민주화를 외쳤습니다. 이를 계엄군으로 진압한 전두환 신군부 세력은 수많은 시민들을 학살하였고, 광주 시민들은 침묵을 강요당했습니다. 하지만 5.18 민주화운동은 시간이 흘러 6월 항쟁의 동기가 되지요. 자 이쯤에서, 6월의 끝에 선 오늘만큼은 이런 역사적 배경 속 일어난 6.10 민주항쟁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해보려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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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관이 책상을 탁 치니 억하고 쓰러졌습니다.”
영화 <1987> 명대사이기도 한 이 문장, 다들 한 번씩은 들어보셨을 거라 생각해요. 1987년 1월 14일, 박종철 열사는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심문을 받던 중 물고문 질식사로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나 경찰은 질식사가 아닌 쇼크사로 사인을 발표합니다. 위 발언은 그 기자회견에서 당시 치안본부 5차장 강민창이 한 거짓 시인 발언이지요. 그러나 오연상 의사의 증언, 신성호, 윤상삼 기자의 특종 보도 등으로 이 사건이 단순 쇼크사가 아닌 물고문 질식사라는 것이 세상에 밝혀지게 되었어요. 이를 계기로 진실은 세상에 밝혀지게 되었고, 국민들은 저항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전두환은 몇달 뒤,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거부하고 기존 헌법으로 다음 대통령 선거를 치르겠다는 호헌조치를 발표하며 국민들의 목소리를 묵살했습니다. 동시에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가해자가 축소 조작되었음이 밝혀졌지요. 이에 분노한 국민들은 6월 10일 대규모 집회를 준비하게 돼요. 그런데 그 전날, 각 대학에서 열었던 사전집회에서 경찰들이 학생들에게 최루탄을 발사하며 집회를 제압했습니다. 그리고 이때 이한열 열사는 최루탄을 직격으로 맞아 목숨을 잃고 맙니다. 박종철 열사와 이한열 열사는 고작 향년 22세, 20세였습니다.
이런 사건들이 연달아 발생하자 국민들의 분노는 절정에 치달았고 전국적으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어요. 전국 18개의 도시에서 시민 24만여명은 ‘호헌철폐 독재타도’, ‘직선제 개헌’이 적혀있는 피켓을 들고 시내로 모여들었지요. 결국 당시 민주정의당의 노태우 대표위원은 직선제 개헌이 포함되어 있는 6.29 선언을 발표하였고, 전두환 정부도 이를 수용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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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열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이 낫다는 말처럼, 한 사람 한 사람이 전부 모여 끝끝내 독재 정권을 물리치고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되찾았습니다. 몇십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가 우리의 의견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고, 나라를 위한 대통령을 내 손으로 뽑을 수 있는 것은 그때의 처절한 저항과 희생이 있었기 때문일테지요.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냐는 질문에, 그들은 말해요. 당장 바뀌지는 않지만, 하나하나 쌓다보면 언젠가 바뀔 거라고. 혹여 바뀌지 않더라도 그저 옳은 것을 옳다고 말하기 위해서 한다고. 끝까지 인간이기를 포기하지 않았던 그들의 희망이 다시금 존경스러워집니다. 과연 저는 그 시대에서 목숨을 걸고 기꺼이 뛰쳐나갈 수 있었을까요? 고민없이 ‘그렇다’고 말하기에는 사실 망설여지지요. 그래서 더 그분들께 빚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가 더 나은 민주주의에 대해 고민하고 행동해야 하는 첫번째 이유는, 그들의 희생과 피로 어렵게 써진 것이 곧 지금의 ‘민주주의’이기 때문일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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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헌법 제 1조 2항,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가란 국민입니다!” - 영화 <변호인>
과거를 짚어봤던 오늘의 레터 어떠셨나요? 이제는 민주주의를 치열하게 지켜냈던 지난 나날을 지나, 현재의 상황을 진단할 차례예요. 현재 대한민국의 주권은 우리에게 있나요? 우리는 민주시민으로서 이를 인식하고 있나요? 이에 대한 고민은 다음 레터에서 이어가보도록 해요. 다시 한 번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를 위해 거리로 뛰어드셨던 모든 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며 오늘의 레터 마치겠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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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 참.🫦
[새알의 참견]
에디터 키키🍥, 영영🍀, 이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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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키의 참!🤚견 |
작년 12월부터 유독 정치가 제 삶과 가까워졌다는 생각이 들어요. 점점 커가면서 정치와 일상이 분리될 수 없다는 걸 깨달아서일까요? 요즘엔 특히 ‘민주주의’와 ‘민주시민’이라는 키워드가 훅 가까워진 느낌이에요. 늘 민주주의가 최고의 체제는 아닐 거라 생각하면서도 왜 민주주의가 짓밟히면 이렇게 화가 날까, 생각해보면 그 중 하나의 이유는 ‘이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희생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이렇게나 노력해서 겨우 얻어낸 민주주의를 감히 짓밟는다는 건 현재를 넘어 과거에도 상처를 내는 행동처럼 느껴져요. 자신이 사랑하는 것들을 지켜내기 위해 무수히 노력한 모든 ‘열사’와 ‘의사’들에게 감사와 존경을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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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영의 참!🫲견 |
지금보다 조금 더 어린 시절에 이런 역사를 배우고 나면 항상 두 가지 감정이 들었던 것 같아요. 동정에 가까운 안타까움 그리고 감사함. 그 때는 자신의 목숨보다 조국과 지켜야하는 가치가 더 우선되는 게 놀라웠고, 이해가 잘 되지 않았고, 심지어 조금은 이상하다고 느꼈었어요. 그런데 차츰 그들과 비슷한 나이가 되어가고 있는 지금은 어쩌면 무모했을지도 모를 그들의 행동에 단순히 이해함을 넘어 공감하고 있고 저도 만약 그런 상황에 처한다면 마땅히 그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점점 나라를 위한 희생을 강요받는 걸 싫어하는 친구들이 주변에 많아지는 걸 보면서 저도 가끔은 왜 나라를 위해 나를 바쳐야하는 걸까? 라는 생각이 종종 들 때가 있었는데 이제 저는 그 이유를 정확히 말할 수 있어요. 저에게 나라는 곧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에요. 그들이 적어도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는 마음, 자유로웠으면 좋겠는 마음, 그리고 세상이 조금 더 나아졌으면 하는 희망. 저에게는 이러한 ‘사랑’이 있어요. 그리고 지금의 세상을 만들어주신 열사분들께도 사랑이 있었을 거라는 확신이 생기는 레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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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의 참!🤚견 |
윤석열 대통령이 탄핵되던 날, 저는 TV에 비친 광장의 사람들을 보며 박근혜 탄핵 당시의 광장을 떠올렸어요. 그때 대통령을 끌어내리겠다는 목소리를 주도한 건 40~50대 남성 제조업 노동자들로 대표되는 노동조합 소속 시민들과 세월호를 추모하던 이들이었죠. 100만이 수놓은 촛불은 결국 대통령을 끌어내렸고, 우리는 우리 손으로 뽑은 사람을 직접 끌어내릴 수 있다는 걸 두 눈으로 확인했어요. 하지만 이번에 제가 직접 찾아간 여의도와 광화문은 그때와는 많이 달랐어요. 18살인 저와 나이대가 크게 다르지 않은 10대, 20대가 정말 많았고,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띈 건 젊은 여성층이었어요. 힘 없고 약하기만 하다고 여겨졌던, 때로는 이기적이라는 말까지 들어야 했던 그들이 시위의 선봉에 섰다는 사실에 많은 이들이 놀랐죠. 그런데 어쩌면, 이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몰라요. 과거 민주화운동을 이끈 사람들도, 사회와 권력이 정의롭지 않다고 느꼈기에 거리로 나선 것이고, 12월의 우리도 그랬던 거예요. 우리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언제나 광장에 서 왔어요. ‘과거가 현재를 살리고, 현재가 미래를 살리는’ 민주시민들에게 진심 어린 경의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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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 바. 지. 👖
[청소년이 바라보는 지금의 이슈]
에디터 영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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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78회 토니어워즈에서 6관왕을 수상한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팀,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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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제78회 토니어워즈에서 우리나라 창작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이 뮤지컬 작품상과 극본상을 비롯해 총 6개의 상을 석권하며 국내에서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이는 우리나라 최초의 일로, K-뮤지컬의 영향력이 이제는 한국을 넘어 세계로 뻗어나갔음을 증명하는 엄청난 성과로 여겨졌습니다. 이처럼 뮤지컬이라는 문화가 가지는 힘은 상당하며, 우리는 우리만의 문화를 통해 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BTS의 빌보드 싱글차트 1위,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그리고 어쩌면 해피엔딩의 토니상 수상까지 매순간 느끼고 있습니다.
특히 앞으로의 한국 창작 뮤지컬의 미래가 더욱 기대되는 것은 우리나라 뮤지컬만이 가질 수 있는 고유한 장점에 있는데요. 그것은 바로 우리 민족의 역사가 담겨있다는 것입니다. 명성황후의 일대기를 바탕으로 한 <명성황후>,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 1년을 다룬 <영웅>과 같은 유명한 대극장 작품들부터 우리나라의 천재작가 이상과 김유정의 이야기를 담은 <팬레터>, 6.25전쟁 당시 국군과 북한군의 관계를 감동적인 픽션으로 그려낸 <여신님이 보고계셔> 같이 대학로에서 꾸준한 인기를 누리고 있는 작품들까지 우리 뮤지컬에는 결코 쉽지 않았던 ‘우리들’의 애환이 녹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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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뮤지컬 <소란스러운 나의 서림에서> 의 한 장면, 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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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최근 위에서 언급한 작품들을 잇는, 따뜻한 시대극을 관람하고 왔는데요. 제가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뮤지컬 <소란스러운 나의 서림에서>는 1940년 비밀리에 독립운동 자금을 대며 자유가 있는 미래를 꿈꾸는 ‘양희’와 1980년 독재정권에 대항하는 학생운동 시위에서 현장을 기록하는 글을 쓰는 대학생 ‘해준’이 40년의 시간을 넘어 책 한 권을 통해 소통하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입니다. 제가 이 뮤지컬을 보면서 좋았던 장면이나 느꼈던 감정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도 많지만, 그럼에도 오늘 제가 둥지님들께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딱 두 가지인 것 같아요.
먼저, 우리 정말 잘 살아야겠어요. 나라를 보호하고 지킨 이들의 희생을 잊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호국보훈의 달, 6월이잖아요.🌺 지금 이 순간에도 나라를 지키려고 애쓰고 계신 군인분들께도 당연히 감사와 존경을 표해야 하지만, 이 극을 보면서 저는 나라다운 나라를 위해 투쟁하신 독립열사분들과 민주열사분들께 우리가 엄청난 빚을 지며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이 뮤지컬의 명대사이자 슬로건이 ‘나의 오늘은 너의 내일’인데요. 두 주인공이 처한 상황을 핵심적으로 잘 표현해낸 대사이기도 하지만, 그분들의 오늘이 결국 우리들의 오늘을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어 보면서 눈물이 계속 흘렀습니다. 진짜 어른들의 헌신 덕에 어렵게 지켜낸 조국을 다시 잃을 수는 없으니까 우리도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며 좋은 어른이 되어가요.🥹
그리고 또 한 가지, 메인 컨텐츠에서 수달이 언급해준 것처럼 ‘시대와 시대는 시간을 넘어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을 강하게 믿을 수밖에 없게 되었어요. 둥지님들, 독립운동과 민주화 운동의 연결지점이 있다고 생각해보신 적 있으신가요? 저는 부끄럽게도 한 번도 그러지 못했던 것 같아요. 물론 두 운동 모두 나라를 지키기 위한 숭고한 희생정신이 담겨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한 번도 같이 배워본 적도, 연결해서 생각해본 적도 없었거든요. 그런데 주인공들의 대사들을 하나씩 곱씹어보면서 40년의 시간을 사이에 두고도 변하지 않고 똑같이 해당되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여전히 세상이 바뀔 수 있다고 믿으며 폐허의 거리로 뛰어들어야 하는 청춘들, 그 안에 적혀있는 글의 힘을 무서워하며 종이를 불태워버리는 사람들, 자유와 사랑 같은 가치들…. 나약한 빈 종이에 단단한 문장을 새기던 두 사람을 바라보며 저는 시간을 건너 우리는 대화할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역사가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시대와 시대는 분명히 맞닿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시대는 어떤 시대와 연결되고 있나요? 여러분은 누구와 마주하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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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회의에서 인턴일지에 대한 피드백을 받았다. 다른 에디터들은 지금의 인턴일지가 명확한 목적의식이 부족하다고 말해주었고, 나 역시 같은 고민을 하고 있던 터라 인턴일지의 방향성을 다시 고민해보게 되었다.🤔
내가 새알에서 인턴십을 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뉴스레터라는 매체를 직접 만들어보고 싶었고, 둘째, ‘좋은 어른’과 ‘지금의 사회’에 대해 청소년의 시선으로 질문하고 고민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 목적을 담으면서도, 콘텐츠로서도 의미있는 인턴일지를 만들 수는 없을까 고민했고, 여러 아이디어를 떠올려보고 있는 중이다. 그 일례로 주변 사람들을 인터뷰하거나, 소수자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는 것도 생각해보았다. 혹은 매주 우리 사회 속 좋은 어른에 대한 이야기를 담거나, 일상에서 만난 좋은 어른에 대한 글을 쓰는 것도 생각하고 있다.
발행일은 다가왔지만, 고민을 끝내지 못해 내 아이디어들을 둥지님들께 맡기려고 한다. 앞으로 인턴일지 자리에 어떤 코너가 들어왔으면 하는지 소통창구 구글폼을 통해서 투표해주시면, 다음 레터부터는 여러분이 투표한 코너로 돌아올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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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지님! 오늘의 새알, 어땠나요? 많관부 🪺
[많은 관점 부탁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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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질문 💭
둥지님은 1987년 서울의 6월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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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알은 언제나 둥지님들과의 소통을 기다립니다~ 우리 같이 얘기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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