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알 뉴스레터 #24 | 2025. 7. 10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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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질문 💭
[오늘의 레터와 친해지기 위한 준비운동]
둥지님에게 '민주주의'란 어떤 의미인가요? 그리고 한국 사회에 민주주의는 어떤 의미일까요?
(🍀: 저에게 민주주의란 내가 나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든든한 ‘밑바탕’ 같은 존재이고요. 한국 사회에서 민주주의는 정착한 듯 계속 위태로운 상태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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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알맹이 💥
[오늘의 레터 코너별 요약]
메인🪺 |
민주주의의 위기를 겪은 이후, 현재 우리는 어떤 과정을 거쳐오고 있는지 자세히 살펴보며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했습니다.
새참🫦 |
현재 각자 에디터들이 느끼는 우리 사회와 정치의 가장 큰 문제점을 밝히고 앞으로 나아갔으면 하는 민주주의의 모습에 대해 상상해봤어요.
청바지👖 | 이란-이스라엘 전쟁을 ‘휴전국’ 국민이라는 우리의 정체성을 투영해 새롭게 바라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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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지님들~ 어느덧 7월이 되었습니다! 6에서 7로, 숫자가 하나 바뀌었을 뿐인데 기온은 금세 10도를 훌쩍 넘겼고 요즘은 밤에도 더워서 잠을 못 이룰 정도로 극심한 더위가 이어지고 있어요.🥵 저는 요새 등교길만 올라도 티셔츠가 온통 땀범벅이라 참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데요. 물론 일상 속 불쾌지수가 올라가는 것도 폭염의 안 좋은 영향이긴 하지만, 무엇보다 이제는 더위가 건강을 위협할 수 있을 정도로 심각해지기도 했잖아요. 그래서인지 무더위 속 00 둥지님의 건강은 괜찮으신지 안부를 묻고 싶어지는 여름입니다.☀️ 혹시 폭염에 대비하는 나만의 꿀팁이 있다면, 우리 공유하고 같이 건강하게 여름을 보내봐요! ㅎㅎ
시간은 이렇게 빠르게 흘러 우리를 여름에 데려다 놓았지만, 아직 우리의 겨울은 다 끝나지 않았습니다. 어제 12.3 비상계엄과 관련해 특검을 받고 있는 윤석열 전 대통령이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했다는 소식, 뉴스를 통해 많이들 접하셨을텐데요. 오늘은 민주주의를 지켜낸 과거를 조명했던 지난 레터 <23. 비로소 6월의 봄이 오기까지 🌺> 에 이어 현재의 민주주의를 다뤄보고자 합니다. 비상계엄이 있던 그 날의 기억을 다시 한 번 떠올리고 약 6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어떤 과정들이 있었는지 차근차근 살펴볼텐데요. 마지막에는 우리가 어렵게 지켜낸 민주주의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면 좋을지 저 에디터 영영의 개인적인 생각도 슬쩍 담았으니 너무 무겁게 생각하지 마시고 가볍게 읽어주시길 부탁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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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3일, 그 날을 모두 기억하고 계시겠지요? 고백하자면, 저는 아직도 그 날의 충격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습니다. 그 날은 제가 한 학기 동안 예정에도 없던 민주주의를 치열하게 고민하게 만들었고, 결국 저를 세상에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되겠다고 결심하게 만들었어요. 또 저는 더 이상 청소년이라는 이유만으로 정치 문제를 회피해서는 안되겠다는 경각심을 가지게 되었고, 안 그래도 무거웠던 투표 용지가 더 무거워지는 경험을 했지요. 분명히 같은 세상인데 저는 그 날 이후로 우리 사회가 달리 보였습니다. 그 자리에 영원히 있을 줄 알았던 국회의사당을 볼 때면 괜시리 안도되는 마음이 들었고, 당연한 줄 알았던 일상 속 자유들은 무척 소중해졌어요. 이렇게 위기는 때론 당연한 것들이 당연하지 않고 감사할 일이라는 생각을 갖게 하기도 하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우리는 이미 민주주의의 위기를 여러 번 반복했습니다. 지난 레터에서 언급했던 1980년 6월 민주항쟁부터 2024년 비상계엄 탄핵 시위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섰는지 이제는 일일이 언급하기 어려울 정도로 말이에요. 그래서 이제 우리는 우리 사회의 가장 기본이 되는 뿌리, 민주주의가 흔들리는 나라에서 두려움에 떨며 지내지 않을 권리가 있습니다. 즉, 더 이상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시민이 거리로 나가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마땅히 꿈꿀 필요가 있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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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지금은 우리의 민주주의가 흔들렸던 원인을 철저히 분석하고, 앞으로 흔들리지 않고 나아가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에 어떤 것들이 필요할지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때입니다. 위기를 기회로 전환한 모범 사례가 되려면 이전보다 더 발전한 민주주의가 필요하니 말이에요. 그런데 어쩐지 이상한 것 같지 않나요? 🤨 혼란스러웠던 계엄 상황이 우리에게 남기고 간 것은 민주주의의 진보나 발전 혹은 국민들의 연대 같은 것이 아닌 갈등과 분열, 그리고 양극화뿐이었으니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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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리스마스에도 탄핵 촉구 시위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 국민일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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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갈등의 조짐은 일찌감치 비상계엄 상황이 끝난 직후부터 곳곳에서 포착되었던 것 같아요. 한 쪽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을 촉구하는 시위가 열린 한편, 또 다른 쪽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을 반대하는 시위가 열리며 분위기가 과열되는 장면을 만날 수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추후에 윤석열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서부지방법원 폭동이 일어났을 때에는 상황의 심각성을 더 크게 실감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어쩌다 이념이라는 것이 우리를 이렇게 폭력적으로 만들었을까?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되기도 했고요.
특히 최근 극단적인 시위가 2030과 같은 젊은 사람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는 소식을 기사에서 접하며 깜짝 놀랐던 기억이 떠오르는데요. 공약이나 후보자에 관계없이 특정 당이나 이념을 강하게 지지하는 연령은 주로 과거 세대인 노년층일 거라고 예측했던 저의 생각과는 달리 이제는 청년층조차 극단적인 정치관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우리가 이념 간의 차이를 횡단하고 더 나은 민주주의를 위해 함께 숙의할 가능성은 더욱 희박해질 것 같다는 염려가 제 안에 자라나기 시작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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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와 갈라치기는 자유민주주의와 공존할 수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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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역에서 유세를 하고 있는 이준석 후보, 오마이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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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최근 한 기사를 통해 그 염려가 이제 더 이상 염려가 아닌 현실임을 확인하게 되었어요. 기사의 내용은 개혁신당의 이준석 의원이 대통령 후보로서 대선에 출마했을 때, 남자 고등학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는 것이었고, 대선토론에서 한 언어폭력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는 것이었죠. 저희 새알 에디터들과도 같은 또래인 청소년들이 이러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은 저에게 무척 충격적이었고 기사의 마지막 단락에서 언급된 것처럼 이러다 정말 멀지 않은 미래에 이준석 의원이 대통령이 될 것 같다는 불안이 저를 압박해왔어요. 제가 새알에서 글을 통해 이준석 의원을 지속해서 비판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에요. 자유민주주의 사회와 그의 정치 인생을 상징하는 단어인 혐오와 갈라치기, 이 둘은 절대 공존할 수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자유민주주의는 시민자유를 보장하고, 소수자의 권리를 보호하며, 표현의 자유 등을 기반으로 하는 사상이에요. 그런데 일부의 권리만 인정하고 일부만 더 많은 혜택을 누릴 수 있게 하려고 하는 그의 정치적 비전이 어떻게 자유민주주의 사회에 부합한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그와 그의 지지자들은 틀린 것을 틀렸다고 인정하지 않아요. 지난 청바지에도 실었었던 내용이지만, 이준석 의원이 대선토론에서의 언어폭력에 대해 조건부 사과만 남긴 것 다들 알고 계시죠.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의견은 수용하려 하지 않는 이들과 더 나은 민주주의에 대해 정말 같이 논의해볼 수 있는 여지가 남아있는지 저는 잘 모르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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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우리는 혐오와 갈라치기에 무던해지고, 갈등과 분열에 익숙해지며 극단적인 정치관을 수립하는 것이 별로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 아주 이상한 사회에 살아가고 있어요. 우리 사회는 도대체 민주주의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길래 이런 일들이 자꾸 일어나는 걸까요? 여러분은 우리가 어렵게 지켜낸 민주주의가 이런 모습이길 기대하셨나요? 적어도 저는 아니라고 대답하고 싶어요. 제가 기대한 민주주의는 좀 더 온화하고, 모두를 포용할 수 있고, 한 사람에 의해 무너지지 않는 단단한 민주주의였거든요.
저는 우리가 이렇게 발전된 민주주의의 모습을 꿈꾸려면 더 이상 극단으로 나아가서는 안된다고 생각해요. 서로의 의견을 들어보는 것이 필요하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 나의 의견만 옳다는 태도를 버리는 것이 무엇보다 필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에 저에게 울림을 준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이 쓴 <자유론>의 일부 구절을 인용해보고자 하는데요. 밀은 자신의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어요.
“우리는 기존의 의견이 진리일 것이라 확신할 수 없다. 이견을 갖고 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억압하려는 사람들에게도 오류가능성이 있다. 논의를 침묵시키는 모든 행위는 자신의 무오류성을 가정하는 것이다. (중략) 신뢰할 만한 가치가 있는 판단은, 그 판단을 내린 사람이 자신의 의견과 행동에 대한 비판에 마음을 열어두었을 때 해당한다. 반대 의견을 듣고, 옳은 부분을 수용하고, 잘못된 부분은 자신과 필요하다면 타인에게도 설명하는 습관을 들였을 때. 이것이 어떤 주제를 좀 더 완전히 이해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밀은 우리에게 언제나 오류가능성이 존재한다고 생각했으며 신뢰할 만한 가치가 있는 판단은 그 판단이 모든 비판에 열려있을 때에야 가능하다고 믿었어요. 즉, 그는 ‘내가 언제나 틀렸을 수 있음을 인지하라!’는 메시지를 우리에게 남기고 싶었던 거에요. 내가 틀렸을 수 있다고 생각한 채 나와는 완전히 다른 생각을 가진 타인과도 각자의 의견을 정확히 공유하고 토론할 수 있을 때에야 하나의 진리에 다다를 수 있다고 믿었거든요. 저는 이러한 밀의 관점이 우리 시대에 딱 들어맞는 지혜라고 생각합니다. 너도나도 모두 옳은 시대에 틀렸다고 자신의 실수를 인정할 수 있는 것, 그것이야말로 모두를 포용할 수 있는 정치인의 덕목이자 우리가 견지해야할 태도가 아닐까요?
저는 오늘 여러분께 이번 레터에서 제가 답했던 질문들을 다시 던지며 마무리를 하고 싶습니다.🙂 여러분이 기대했던 민주주의의 모습은 어떤 모습이었나요? 또, 우리가 지키고 싶었던 민주주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그리고 앞으로 우리의 민주주의는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요? 매우 어렵지만 그래서 중요한 질문들 앞에 지금 우리는 서 있습니다. 다음 레터에서는 이 질문들에 대한 둥지 분들의 의견을 받아 레터에 실어볼 예정이에요. 새알의 레터는 항상 둥지분들의 생각이 보태짐으로써 완전한 글로 존재한다는 것! 꼭 기억하시고 곧 올라갈 다음 레터에 관한 공지도 잘 읽어봐주시길 부탁드려요! 💞 그럼 긴 호흡으로 오늘 글 함께 달려주셔서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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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 참.🫦
[새알의 참견]
에디터 키키🍥, 수달🦦, 이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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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키의 참!🤚견 |
요즘 여러 수업들을 마무리하는 시점인데요. 한 학기를 정리하며 돌아보니 제 생각보다 제가 정치에 관련된 활동들을 많이 했더라고요! 그 중에 하나는 존 로크의 <통치론> 원전을 읽었던 거예요. 통치론은 당시의 왕권신수설을 반박한다는 목적이 뚜렷하긴 하지만, 로크의 생각은 지금까지도 헌법이나 정치 체제의 뿌리를 이루고 있어요. 통치론을 읽으면서 ‘우리의 정치는 과연 공동선을 위한 것일까? 공동체에 의해서 주어진 권력이 맞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점점 더 정치가 정치 그 자체가 아닌 이익싸움으로 바뀌는데, 그럼에도 그들을 ‘정치자’라고 부를 수 있을까 싶었거든요. 정당을 위해서, 자신을 위해서 혐오발언을 내뱉는다거나 투표권을 거부하고 국회를 떠난다거나, 다른 당의 사람들을 깎아내리고 공격한다거나… 이것도 전략이자 정당한 공격인 걸까요? 더 중요한 ‘공공선’이라는 가치를 놓치고 있진 않을까요? 우리가 나아가야할 민주주의는 경쟁에 승리하기 위해 ‘전략‘이라는 이름으로 누군가를 파괴하는 길은 아닐 거예요. 정말 정치다운 정치로, 내가 이기기 위한 게 아나라 우리가 잘 살기 위한 정치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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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달의 참!🫲견 |
영영이 위에서 언급했듯이, 저에게도 12월 3일은 잊을 수 없는 날이에요. 대통령은 반국가세력들로부터 국민들을 지키기 위해서, 즉 국민들을 위해서 계엄을 선포했다고 말했어요. 딱 위의 말만 들었을 때는 그럴듯해보이지요. 하지만 저는 대통령의 말을 듣고 언젠가 읽었던 유교 철학 책에서 ‘위민’과 ‘여민’의 차이를 다루었던 것이 기억났어요. ‘위민’은 ‘국민을 위한다’는 뜻으로 국가의 ‘소유자’인 대통령이 국민들을 위해서 베풀어주는 듯한 의미를 담고 있어요. 반면에 ‘여민’은 ‘국민과 더불어’라는 뜻으로 대통령은 하나의 직책일 뿐이며 모두가 정치를 구성하는 주체이자 동반자라는 의미를 담고 있지요. 저는 민주주의와 정치를 모두가 함께 여민의 정신으로 차근차근 쌓아올려나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동반자로서, 주체로서 말이에요. 그러다보면 언젠가 진정한 정치와 민주주의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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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의 참!🤚견 |
요즘 우리 사회를 보면, 정치적 입장이 다르면 대화를 피하거나 사람 자체를 거부하는 모습을 자주 보게 돼요. 처음엔 정치에 관심이 없어서 그런가 생각했지만, 알고 보니 더 큰 문제는 ‘진영논리에 갇힌 태도’였어요. 특히 인터넷 커뮤니티나 유튜브, SNS를 보면, 자신의 정치 성향에 맞는 정보만 소비하고 반대편 주장은 듣기조차 싫어하죠. 이로 인해 우리 사회에서는 대화와 토론이 점점 사라지고 있어요. 민주주의는 다양한 의견 속에서 균형을 찾는 과정인데, 우리는 점점 균형보다는 분열을 선택하고 있는 것 같아요. 대표적인 예가 ‘부정선거 음모론’이에요. 자신이 원하는 후보가 당선되지 않았다고 선거 자체를 의심하고, 근거 없는 주장을 믿는 사람들이 실제로 제 주변에도 있었어요. 근거를 들어 반박해도 “너는 세뇌당했다”는 말만 돌아왔고, 그럴 때마다 민주주의가 점점 무력해지는 느낌을 받았어요. 민주주의의 핵심은 ‘선택’이지만, 그 선택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숙고’가 먼저 있어야 해요. 상대의 주장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 태도, 그리고 ‘나는 정말 알고 있는가’를 돌아보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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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 바. 지. 👖
[청소년이 바라보는 지금의 이슈]
에디터 수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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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지님은 평소 뉴스와 기사들을 잘 챙겨보시나요? 저는 시사 뉴스레터를 구독하여 그날의 이슈들을 확인하곤 하는데요. 아무리 쉽게 풀어져 있는 내용이어도 어렵게 느껴질 때가 있고, 그중에서도 배경지식을 요하는 ‘세계’ 분야가 나오면 늘 멈칫하게 되는 것 같아요. 하지만 약 3주 전 저도 깜짝 놀라 주의깊게 지켜본 세계 이슈가 있었어요. 바로, 저와 둥지님들을 포함한 전세계인들을 긴장시킨 ‘이란-이스라엘 전쟁’이었습니다. 지금은 다행히 휴전되었지만, 3차 세계대전이 우려된다는 반응이 나왔던 만큼 국제사회의 큰 사건이었지요. 오늘 청바지에서는 이란-이스라엘 전쟁에 대해 알아보고, 휴전국가 국민인 우리가 전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해보려 합니다.
우선 이란-이스라엘 전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두 국가의 오랜 역사로 거슬러 올라가야 해요. 1900년대 이란과 이스라엘은 원래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었어요. 하지만 1979년 ‘이란 혁명’ 이후로 정권이 교체되면서, 이란의 새 정부는 공식적으로 반이스라엘, 반미를 선언했습니다. 이때부터 두 국가는 적대관계가 되었는데, 그때부터 직접적이고 공식적인 무력 충돌은 없었지만 증거를 남기지 않고 비밀스럽게 적국을 공격하는 그림자 전쟁을 지속해왔다고 해요. 또한 이란은 수십년간 핵 개발을 해왔습니다. 최근 미국과의 핵 협상이 진행되기도 했고요. 이 상황을 최대 위협으로 느낀 이스라엘은 결국 현지시간 기준 2025년 6월 13일 새벽, 이란을 공습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은 이란 내 핵시설 등 정확한 위치를 조준하여 수십곳을 폭격했으며, 이 과정에서 이란의 고위직들이 사망했어요. 한밤중 계획 공격이 이란의 허를 찌른 것이지요. 다음날 이란은 이에 대응하여 이스라엘의 도시 등에 미사일을 발사했습니다. 이 사이에서 미국도 이란의 핵 시설에 폭격을 가하며 이스라엘을 지지하기도 했고요. 이로써 이란에는 민간인을 포함한 1,190명이 사망하고 4,475명이 부상당했고, 이스라엘은 최소 28명이 사망하고 수백명이 부상당했습니다. 그리고 전쟁 12일만에 미국과 이스라엘의 제안으로 휴전하게 되었어요. 이란-이스라엘 전쟁은 제3차 세계대전 우려를 불러일으키며 석유의 값을 10% 이상 올렸고, 그로 인해 물가가 상승하면서 한국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리 먼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하지만 저는 이 전쟁 이슈 중에서도 ‘휴전’이라는 단어 앞에서 한동안 생각에 잠기게 되었어요. 저 또한 휴전국인 한반도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에요. 총성이 멈췄을 뿐, 한국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종전’이 아닌 ‘휴전’국가에서 산다는 것은 지금의 당연하지 않은 평화가 언제 깨질지 모른다는 것이기도 하지요. 한반도이든, 이란이든, 이스라엘이든 나라에서 시선을 돌려 사람들의 삶을 바라보았을 때, 휴전국의 무고한 시민들은 전쟁의 여파로 오래 고통받고, 이 고통이 다시 더해질 수 있다는 그 불안 속에서 살아가야 해요. 국가는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데 정작 국가들의 싸움에 가장 고통받는 건 국민인 것이 화가 나기도, 무력해지기도 하는 지금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전 앞으로 이란-이스라엘 전쟁을 단지 어려운 세계 뉴스로 바라보지 않고, 국민들의 삶을 공감하고 연대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국가 간의 싸움’ 그 너머 사람들의 일상을 파괴하는 전쟁을 우리는 휴전국 국민으로서, 또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요? 이 질문을 끝으로 오늘의 청바지를 마치겠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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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둥지님들! 새롭게 돌아온 이슈의 인턴일지입니다. 지난 레터에서 저의 인턴일지에 대한 고민을 둥지님들에게 솔직히 털어두고, 인턴일지의 방향성에 대한 투표를 올렸었죠! 그 투표의 결과가 나왔습니다. 바로, ‘내가 만난 좋은 어른’과 ‘사회의 좋은 어른’을 소개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 가장 많았어요. 그래서 앞으로의 인턴일지에서는 제가 보고 느낀, 혹은 만났던 좋은 어른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올 것 같아요. 인턴일지에서 다뤄주었으면 하는 어른이 있다면 많관부를 통해 많이 남겨주세요!
여러분, 지난 겨울에 광장에서 울려퍼졌던 노래들을 기억하시나요? 지난 광장은 투쟁의 상징인 민중가요 <상록수>와 <임을 위한 행진곡>뿐만 아니라, 소녀시대의 <다시만난세계>와 에스파의 <Supernova>같이 젊은 세대의 노래가 함께 섞인 세대 통합의 장이 되기도 했어요. 그런데 저는 그 곳에서 한 민중가요가 귀에 들어왔는데요, 그 곡은 바로 고 김민기님의 '아침이슬'이라는 곡이었어요.
긴 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진주보다 더 고운 아침 이슬처럼
내 맘에 설움이 알알이 맺힐 때
아침 동산에 올라 작은 미소를 배운다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떠오르고
한낮에 찌는 더위는 나의 시련일지라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김민기, <아침이슬>
이 곡은 1987년의 6월항쟁의 상징과도 같은 곡이에요. 당시에도 광장에서는 빠짐없이 <아침이슬>을 불렀다고 해요. 그로부터 수십년이 지난 2024년, 광장에 서있는 저에게 이 노래는 큰 울림을 주었어요. 계엄이라는 상처를 딛고 민주주의를 지켜내기 위해 모인 사람들에게 저항의 의지와 새로운 세상을 향한 희망을 주는 듯한 노랫말이, 왜 이 곡이 우리나라의 광장의 상징적인 노래인지 알려주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저는 이 곡을 만든 김민기님이 어떤 분인지 궁금해졌고, 찾아보게 되었어요. 1951년생의 가수이자 작곡가, 그리고 뮤지컬 연출가였던 김민기님은 민중가요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안기부에 끌려다닐 정도로, 권력에 맞서고 자신의 신념을 꺾지 않았던 예술가였어요. 저에게 이 분이 정말로 인상 깊었던 이유는, 그렇게 분명하고 멋진 신념을 가진 분이었음에도 다른 사람에게 자기 생각을 강요하지 않고, 타인의 방식을 존중했다는 거에요.
극단 ‘학전’을 이끌며 그는 모든 배우와 스태프와 정식 근로계약을 맺고, 공연이 흥행하지 않아도 노동의 가치를 존중하며 정당한 보수를 보장했어요. 또 신인 배우들이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는 것을 응원하며, 늘 뒤에서 조용히 무대를 지탱했죠. 김민기님은 배우들에게 “나는 뒷것이고, 너희는 앞것이야.”라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해요. 자라나는 아래 사람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지 않고 존중하며 거름이 되어준 것이 저로 하여금 김민기님을 좋은 사람으로 생각하게 만들었어요.
저는 요즘, 김민기님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며 저에게 있어 뒷것이 되어준 ‘좋은 어른’을 많이 떠올려요. 제 주변에는 항상 감사하게도 좋은 선생님들이 많이 계셨어요. 그런 분들과 학교에서 함께 할때면 제가 좋아하는 것을 찾고, 그것에 몰두할 수 있게 돼요. 그래서 저는 저에게 좋은 선생님은 어떤 분들이었을까? 생각해보면, 굳이 저에게 인생의 충고나 조언을 주려고 하는 선생님보다는, 제가 하고싶다고 말하는 것에 대해서 이해해주고, 도움이 될 정보나 방법이 없을까 항상 고민하고 도와주시는 분들이었어요. 굳이 나서서 말하지 않아도,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키며 누군가의 앞길을 열어주는 그런 좋은 어른들 말이에요.
앞으로의 인턴일지에서 저는 이렇게 제 삶 속에서 우연히 마주친 좋은 어른들을 찾아 소개해보려고 해요. 어쩌면 여러분도 각자의 삶 속에서 ‘좋은 어른’ 한 분쯤은 떠올릴 수 있는 기회가 되면 좋을 거 같아요. 오늘의 인턴일지는 여기서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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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지님! 오늘의 새알, 어땠나요? 많관부 🪺
[많은 관점 부탁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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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질문 💭
둥지님에게 '민주주의'란 어떤 의미인가요? 그리고 한국 사회에 민주주의는 어떤 의미일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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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알은 언제나 둥지님들과의 소통을 기다립니다~ 우리 같이 얘기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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