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알 뉴스레터 #8 | 2024. 11. 21 (목)
|
|
|
안녕하세요, 둥지님! 반갑습니다. 에디터 수달입니다. *🎶숨쉴 수가 없어~ 움직일 수조차 없어~🎵. 저는 지금, 카페 창문으로 비 오는 풍경을 바라보며 원고를 작성 중이에요. 좋아하는 초코 케이크와 함께요. 사실은… 제가 오늘(발행일 기준 전날) 생일이거든요ㅎㅎ. 어릴 때는 생일이 되면 놀이공원을 가거나, 저멀리 여행을 가기도 했는데 이제는 일상과 다르지 않은 날을 보내는 것 같아요. 하지만 그럼에도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사람들의 사랑을 온 몸으로 받을 수 있다는 점! 진심이 담긴 편지를 받았고, 평소에 연락을 하지 못했던 친구들에게도 톡이 왔어요. 한 선생님은 저를 꼭 안아주셨고, 성대한 생일축하 노래를 받기도 했습니다. (저희 학교는 급식실에서 전교생이 다 함께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는 문화가 있거든요.😂)
학교에서의 사랑, 환대, 응원 등은 저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일상’, 혹은 그 이상이에요. 제가 좋은 어른을 마주한 공간도, 좋은 어른을 꿈꾸기 시작한 공간도 전부 학교니까요. 오늘 레터에서는 이와 연결하여 학교, 교육, 그리고 선생님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
*잔나비의 <november rain> 노래 가사예요. 좋아하는 곡인데, 전 항상 이 노래를 꼭꼭 아껴놓았다가 11월의 비오는 날에만 듣는답니다. |
|
|
11월 14일 목요일. 비행기의 이·착륙이 통제되고, 지하철 집중 배차시간이 연장됐죠. 바로 ‘2025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있는 날이었습니다. 수능은 올해로 32년이 되었어요. 1993년, 암기 위주의 시험 방식에서 벗어나 논리적이고 통합적 사고를 측정하기 위해 도입되었다고 합니다. 대학교에서 학문을 공부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만을 평가하자는 것이 초기 목적이었죠. 하지만, 현재 수능을 떠올려봅시다. 사교육을 통해서만 풀 수 있는 문항들, 점수로만 학생들을 줄세우기하는 대학. 수능의 창시자인 박도순 교수님은 “현재 수능은 초기 목적에서 99% 달라졌다”고 말했습니다. 한편 입시 경쟁에서 비롯된 교육 불평등 또한 심화되고 있어요. 현 정부가 내놓은 ‘킬러 문항 배제’와 ‘의대 증원’ 정책은 ‘사교육 이권카르텔’ 격파는커녕 오히려 의존도를 높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고요. 고민하면 고민할수록 여러 의구심이 피어납니다. 우리의 12년은 오직 ‘대입의 준비 과정’이었나요? 공교육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걸까요? |
|
|
<2022년 개정 초·중등학교 교육과정 총론>에 따르면, 우리나라 공교육이 추구하는 인간상은 바로... |
|
|
[홍익인간: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라 - 우리나라의 교육이념이에요.]
1. 전인적 성장을 바탕으로 자아정체성을 확립하고 자기주도적인 사람
2.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창의적인 사람
3. 인류 문화를 향유하고 발전시키는 교양있는 사람
4. 공동체 의식을 바탕으로 세계와 소통하는 민주시민으로서 더불어 사는 사람 |
|
|
사실 저희가 생각하는 ‘좋은 어른’도 마찬가지예요. ‘나’로서 존재하면서도 함께 잘 사는 법을 고민한다면 금세 단단한 어른이 되어있을 거라고 믿거든요. 이렇게 새알의 정의로 본다면 교육도 결국 좋은 어른을 길러내기 위함인 것이지요.
'좋은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보고 배울 수 있는 다양한 어른이 곁에 존재해야 하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이 시기에 가장 가까이, 또 가장 멀리서 우리의 성장을 지켜봐줄 수 있는 어른은 바로 ‘선생님’일 거예요. 제가 만난 선생님들은 개개인을 다정히 관찰하고, 계속해서 희망을 가르치셨어요. 기꺼이 슬퍼하고 사랑하는 어른들이셨지요. 하지만 조금 더 확장해서 생각해보고 싶었습니다. '현재 대한민국 전체 공교육 학교 현장은 ‘좋은 어른’을 양성할 수 있는 환경인가'에 대해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고 느꼈어요.
"난 그당시 선생님께 '좋은 사람'이 아니라 '좋은 학생'이었어". 일반중학교를 졸업한 친구가 저에게 했던 말이에요. 사람 대 사람으로 존중받지 못했던, 그저 교사와 학생으로서 그 권위 속에 갇혀 지낸 3년이 여전히 자신에게는 상처라고 했어요. 그래서 자꾸만 '좋은 어른'의 존재 또한 의심하게 된다며 덤덤히 고백했고요.
제 친구가 말한 '좋은 학생'과 '좋은 사람'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좋은 학생'은 학생을 지위로서만 바라보는 관점이에요. 수업 참여도, 성실성, 성적 등 최종 결과를 보고 나누어 판단하는 과정을 거쳐요. 다 다른 학생들이더라도 비슷한 평가를 받으면 [~~]한 학생의 범주 안에 묶이는 것이죠. 하지만 '좋은 사람'은 반대예요. 개개인의 장점과 대체불가함을 찾고, 다양한 면에서 좋은 점을 발견합니다. 지위를 떠나 사람으로 인식하는 관점이에요. 하지만 현재 공교육은 학생들에게 같은 수업을 하고, 같은 목표를 지니게 하며 '사람'보다는 '학생'에 더 가까운 관점을 가지게 만듭니다. 자연스럽게 선생님들의 교육 목표 또한 유사하겠지요. 위에서 정의내린 공교육의 본질적 목표를 정확히 알지 못하고, 여전히 대입을 목표로 한 교육을 따르고 있으니까요. 그 현장에서는 오히려 '좋은 학생'이 훨씬 유리할테고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사람'의 가치가 옳다고 믿어요. 좋은 어른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꿋꿋이 아이들을 사람으로서 바라봐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요. 고2가 아닌 열여덟로, 고3이 아닌 열아홉으로 살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
|
|
교육 이야기, 어떠셨나요? 저는 글을 쓰면 쓸수록, 저를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주신 선생님들이 여럿 생각났어요. 하지만 결국 선생님들께 해드릴 수 있는 말은 딱 하나, '당신을 닮은 좋은 어른이 되겠다'는 약속밖에 없을 것 같아요. 조금 더 애써보기로 다짐하며, 오늘의 글을 마칩니다. 감기 조심하세요!! 🤧 |
|
|
'사교육 걱정없는 세상'을 아시나요? '사걱세'는 입시 경쟁과 사교육 고통 문제를 해결하는 시민 단체예요. 중학생 시절, 이 단체에서 만든 수학 대안교과서를 사용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저에겐 굉장히 익숙한 단체인데요, '주간 돈워리'라는 이름의 뉴스레터를 운영 중이더라구요! 기존 블로그나 보고서를 정리하여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한 것 같아요.
교육과 관련한 방대한 논쟁들을 고민하는 시민단체이니, 궁금하다면 뉴스레터를 구독하고 지속적인 정보를 얻는 걸 추천드립니다! 😋 |
|
|
👖 청. 바. 지. 👖
[청소년이 바라보는 지금의 이슈]
에디터 키키 🍥 |
|
|
최근 동덕여자대학교 공학 전환과 반대시위에 대한 얘기, 다들 한 번쯤은 들어보셨지요? 학교 측이 공학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는 내용이 SNS를 통해 알려지며, 11월 10일쯤부터 현재까지도 재학생들은 반대 시위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타 대학교들에서도 연대문을 써서 동덕여대 재학생들을 지지하기도 했지요. 시위의 가장 큰 이유는 공학 전환 반대와 더불어 동덕여대의 불투명한 논의 과정과 학생 주체와의 소통 부재 때문이었습니다.
동덕여대 재학생들은 공학 전환과 관련한 어떤 논의 과정에도 참여하지 못했을 뿐더러, 그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습니다. 이는 중대한 결정에 있어 학교 구성원인 학생 주체의 목소리를 무시하는 일입니다. 동덕여대 총학생회는 이를 알게된 후 학교 측에 면담을 요청했으나, 첫 면담은 학교측의 불참으로 제대로된 소통이 이루어지지도 않았습니다.
학교 측은 학생들의 소통 요구를 무시할 뿐만 아니라 교육자, 책임자로서의 태도를 전혀 보이고 있지 않습니다. 학생들의 요구에 응하지도 않은 채 학생들의 시위를 ‘폭력시위’라 규정하고, 50억이라는 말도 안 되는 수준의 손해배상금을 학생들에게 청구하겠다고 하는 게 ‘어른’이 가질 수 있는 태도인가요? 동아일보가 보도한 학교측의 비상대책위원회의 인터뷰에서 ‘어른’들은 학생을 주체로 인정하지 않고, 책임을 회피하려는 태도를 계속 보이고 있습니다. 또한, ‘공학 전환 논의가 나왔던 공연예술대학에서는 남자 배역이 없거나, 남자 배역을 여학생이 해야 되니까 불만족 요인으로 계속 얘기가 나왔고, 그런 취지의 얘기가 몇 년 동안 나왔던 상황이라 그렇게 크게 반발하리라고는 사실 그렇게 생각했지 못했다’, ‘(남자 배역을) 연기하는 당사자 학생들도 약간 김이 좀 빠진다’며 젠더 프리 배역에 대한 낮은 이해도도 보였습니다. 학교측은 학생들의 ‘폭력적 사태’가 끝나면 논의하겠지만 현재 상황에서는 정상적 논의가 어렵다는 입장을 취했습니다.
여대가 궁극적으로 이루고자 하는 바는 평등에 의한 소멸이지, 학교 유지를 위한 개방이 아닙니다. 여대가 처음으로 설립될 당시의 설립 의의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교육을 받지 못하는 이들의 교육 기회를 위해서였습니다. 그 시대에 만연했던 여성차별에 반대하기 위해서였죠. 여대의 소명은 여성 교육이라는 목표는 평등의 완전한 달성을 통해 ‘소멸’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성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때까지 여대는 존재 이념을 다해야 합니다.
현재의 사회는 어떤가요? 과거와 다르게 ‘완전히 평등한’ 상태인가요? 진주 편의점 폭행 사건, 딥페이크 사건, 순천 길거리 살인 사건 등 여성은 여전히 피해를 받고, 목숨을 잃습니다. 아직 우리에게 평등은 오지 않았습니다. 또한, 여대는 여성들이 오롯이 존재하고, 위협받지 않고, 목소리를 내고, 연대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단순한 교육기관 이상의 가치를 지닙니다. ‘페미’ 같다며 폭행과 살해위협을 당하고, 페미니즘을 욕으로 사용하는 사회에서 여성이 당당하게 여성의 인권에 대해 외칠 수 있던 것도 여대이기 때문임이 크겠지요. 여대의 존재의 의의는 여전하다는 뜻입니다.
동덕여대 재학생들의, 그리고 이를 지지하는 이들의 시위는 단순히 동덕여대에 한정된 공학 전환에만 반대하는 목소리가 아니며, 사회에 만연한 여성혐오를 반대하고, 교육기관에서의 학생 주체의 목소리를 되찾고자하는 노력일 것입니다. 이 사회에서 여성이 목소리를 내는 게 두렵지 않을 때까지 연대하겠습니다. |
|
|
둥지님! 오늘의 새알, 어땠나요?
[소통창구] |
|
|
새알은 여러분을 기다리느라 거북목이 되었답니다.🥹 작은 말이라도 좋으니 부디 많은 의견 남겨주세요!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