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올해 6월 1일에 열렸던 ‘서울퀴어퍼레이드’에 다녀왔습니다. 올해는 주최측 추산 15만명이 참가할 정도로 규모가 거대했어요. 퀴어퍼레이드는 크게 부스, 공연, 행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처음으로 부스가 있는 일대로 들어서자 정말로 많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외국인도, 짙은 무대화장을 한 분도, 휠체어를 탄 분도, 연인과 함께 온 분들도 계셨어요. 커뮤니티가 비슷하다보니 반갑게 인사를 나누시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곳이야말로 정체성을 그대로 인정받을 수 있는 공간이라고 느꼈습니다. 그 자리에서는 제가 어떤 사람이어도, 심지어는 사람이 아니어도 존중받을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모두 다 모르는 사람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그곳을 ‘안전한 공간’이라고 느낄 수 있다는 게 신기했습니다. (내부에서는 *아웃팅 방지를 위해 사진 촬영이 제한되어 있습니다.)
*아웃팅: 당사자의 동의 없이 그 사람의 성정체성이나 성적지향성을 밝히는 일
부스는 대략 60개 정도로 을지로입구역에서 종각역을 거의 다 메우는 규모였습니다. 상담소, 종교단체, 동아리, 대사관, 시민단체 등 부스에 참여한 다양한 단체 중에서도 특히나 제가 기억에 남는 분들이 있습니다. 바로 단순한 활동과 설문, 굿즈 나눔 등을 넘어 사람들에게 따뜻함을 전달해준 어른들이었어요.
예를 들어, 불교 성소수자 모임인 '불반'을 포함해 불교로 모인 연합부스 앞에서는 스님 세 분이 사람들의 손목에 오색팔찌를 묶어주고 계셨어요. 혹여 매듭이 풀릴까 꼭 묶어주시면서 눈을 맞추며 내년에도 다시 만나자고 말씀해주시던 순간이 기억이 납니다. 또, 성소수자 부모 모임에서는 프리 허그 행사를 하고 계셨어요. 몇몇 어머님들이 ‘FREE HUG’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처음 보는 사람들도 밝게 웃으시며 안아주셨는데요. 평소에 퀴어와 관련된 문제로 힘든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도 그저 안아주시는 것만으로 위로가 되었습니다. 순간적으로 눈물이 살짝 올라오기도 했어요.🥹 실질적 도움 이전에 ‘부모(사회적인 부모의 역할)’ 혹은 ‘앨라이’로서 위로와 치유를 주고자 하셨던 것 같습니다. 특히나 가정에서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해 반대를 받는 이들에게요. 모든 부모가 자식을 온전히 지지해주지는 않으니까요.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의 남자주인공 흥수는 동성애자이고, 사회적 시선 때문에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며 밝히기 두려워합니다. 어머니에게 동성애자임을 우연히 들켰던 날, 어머니는 생전 다니지 않던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는 매일 새벽, 침대에 누워있는 흥수의 손을 잡고 '흥수가 정상으로 돌아오길' 기도하고, 흥수는 이게 미칠 것 같다고 말했죠.
시간이 흘러, 흥수가 자취를 하다 잠깐 집으로 돌아왔던 시기에 흥수는 어머니에게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직접 밝힙니다. 어머니는 굳은 표정으로 영화를 보고 오겠다며 나가고, 흥수는 집에 돌아온 어머니의 가방에서 대표적인 퀴어 영화인 <Call Me by Your Name(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영화표 한 장을 발견합니다. 아마 어머니가 흥수를 바꿔보겠다는 마음을 버리고, 먼저 이해해보기 시작했다는 연출이겠지요?
*원작 소설과 영화의 내용이 조금 다르며, 영화의 스토리만을 최소한으로 담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