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 만난 젊은이가 생각납니다. 취업차 제 사무실을 찾아왔습니다. 젊은이에게 물었습니다.
“자네는 뭘 잘할 수 있나?”
“무엇이든 맡겨만 주시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것만으로는 안 돼. 자네가 투수라면 어떤 타자라도 요리할 수 있는 다양한 구질이 필요해.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 타자를 아웃시킬 결정구가 또 있어야 하네.”
“결정구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이 사람아, 여기저기 기웃거리지 말고, 이런 때일수록 차분히 앉아서 공부를 하게. 얄팍한 이력서 한 장 채우려는 게 진짜 공부는 아니야. 누구도 하지 않았던 새로운 분야라야 해!”
젊은이는 뭔가 실마리가 잡힌다 싶었나 봅니다.
“가령 어떤 공부를?”
“음…… 일단 대학 학과에 없는 분야를 골라 도전하는 게 좋아. 예를 들면 물도 괜찮아. 요즘 물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정작 물에 대한 전문가는 그리 많지 않지. 회사는 창조적인 전문가를 찾고 있어. 구직난이라지만 실은 구인난이야.”
젊은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하산했습니다.
그런데 정확히 넉 달 뒤, 그가 내 사무실에 다시 나타났습니다. 이번엔 물병을 들고.
“선생님, 이게 우리 회사가 자랑하는 ‘○○○ 물’입니다. 선생님 덕분이에요. 감사합니다.”
(...)
그 젊은이만 떠올리면 아직도 흐뭇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론 씁쓸합니다. 대학을 졸업하는 순간 차가운 현실의 벽에 부딪혀야 하는 많은 청년 때문입니다. 대학만 졸업하면 고생이 끝날 것 같더니 웬걸, 진짜 고생은 지금부터. 요새 젊은이들 마음고생 하는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졸업 공포증 젊은이가 늘어나는 것도 이해가 갑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학생시절처럼 비판과 불평만 할 수는 없는 일. 더 이상 내 문제. 사회 문제에 방관자가 될 수는 없습니다. 냉엄한 현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격변의 사회, 세계적인 금융위기와 불황, 누군들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있는 사람, 없는 사람 모두 불안과 우울의 늪에 빠져 우왕좌왕입니다.
이런 때일수록 필요한 건 공부, 그것도 창조적 공부입니다. 그 젊은이가 성공한 건, 창조적 공부가 무엇인지 알았기 때문입니다. 영어 단어나 상식 하나 더 외워서 ‘스펙’을 높이는 건 진짜 공부가 아닙니다. 차분히 앉아 내가 처한 상황을 순서대로 생각해 봅시다.
첫째, 우리는 주인입니다. 강의를 듣기만 하는 수동적 학생 혹은 손님같은 기분이어선 안됩니다. 가정의, 직장의, 그리고 이 사회의 주인. 그래서 책임도 내가 져야 합니다.
둘째, 주인이 되면 문제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예전에는 남의 일이었던 것들이 분명한 내 문제가 되어 다가옵니다.
셋째, 문제가 보이면 해결해야 합니다. 이건 내가 할 일, 내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넷째, 해결하려면 새로운 길을 생각해 내야 합니다. 제도를 고치든, 무언가를 새로 만들든 새로운 과정이 필요합니다.
다섯째, 새로운 걸 만들어 내려면 창조적이어야 합니다. 생각하고, 정리하고, 구체적인 방법을 모의하는 것도 모두 창조적 과정입니다.
여섯째, 창조적으로 되기 위해선 공부를 해야 합니다. 해도 많이 해야 합니다. 전문가의 자문을 구하든 인터넷을 뒤지든 새로운 공부가 필요합니다.
이것이 진짜 공부, 진짜 실력을 만들기 위한 공부입니다. 집에서 찌개를 하나 끓일 때도 비법이 필요한 판입니다. 그 비법은 어디서 나옵니까? 재료 하나하나의 맛, 향기, 영양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누구나 공부가 필요합니다.
당신은? 혹시 얄팍한 이력서나 채우겠다고 전전긍긍하는 건 아닙니까? 혹은 이제 공부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공부는 평생 해야 하는 것입니다. 불확실성의 시대, 창조적 인재만이 살아남습니다.
- 출처: 이시형, 『공부하는 독종이 살아남는다』, 중앙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