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더 나은 민주주의를 고민하는 n알들에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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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알 뉴스레터 #25 | 2025. 7. 31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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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질문 💭
[오늘의 레터와 친해지기 위한 준비운동]
둥지님이 꿈꾸는 민주주의의 모습은 무엇인가요?
(💬: 모두가 행복한, 평화로운 세상을 추구하는 것이 민주주의라고 믿어요. 그래서 제가 꿈꾸는 민주주의의 모습은 평화로운 세상이에요! "공장에서 쫓겨난 노동자가 원직복직하는 것, 두꺼비, 맹꽁이, 도롱뇽이 서식지 잃지 않는 것, 가고싶은 곳을 장애인도 마음껏 갈 수 있는 것, 이 땅을 일구는 농민들이 빼앗기지 않는 것이 평화" - 민중가요 <평화가 무엇이냐>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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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알맹이 💥
[오늘의 레터 코너별 요약]
메인🪺 |
민주주의 3부작의 마지막으로, 둥지님들이 생각하는 미래의 민주주의의 모습을 담았어요.
새참🫦 |
새알 에디터들이 민주주의 특집을 마치며 느낀 점을 남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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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민주주의를 고민하는 n알들에게 👂
[메인컨텐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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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둥지님! 에디터 이슈💬입니다. 평소보다 조금 긴 시간을 두고 다시 찾아왔습니다! 이번에 저희가 이렇게 긴 준비 기간을 가진 이유는, 이번 ‘민주주의의 미래’ 특집은 평소와는 조금 다르게 둥지님들과 함께 만들어보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민주주의는 우리 삶과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도, 종종 너무 익숙해서 더는 질문하지 않게 되는 말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12.3 계엄과 또 한 번의 대통령 탄핵, 이 두 사건은 우리 모두에게 민주주의가 단지 투표일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해준 계기가 되었죠.
그래서 새알이 준비한 민주주의 3부작의 마지막 이야기, ‘민주주의의 미래’ 편에서는 앞으로의 민주주의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지 둥지님들의 생각을 들어보았습니다. 원고를 공개 모집한 결과, 두 분의 일일 에디터분들이 참여해 주셨어요. 바로, <우리말과 민주화>를 주제로 글을 보내주신 에디터 멍님과, <포용적 민주주의>를 이야기해 주신 에디터 수제비님입니다.
이제 두 에디터님이 함께 고민해준 민주주의의 내일을, 우리도 함께 들여다볼 시간이에요. 지금부터, 둥지님들과 함께 그려보는 민주주의의 미래로 한 걸음 나아가볼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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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저께 이오덕 선생님의 <우리글 바로쓰기>를 읽었다. 본격적으로 읽은 것은 아니고, 그냥 손에 잡혀서 읽게 되었다. 전에도 한번 읽은 적이 있는데 그때는 끝을 보지 못했다. 내용을 지루하게 느껴서 그랬던 것 같다. 그런데 이번에는 마음을 울리는 주제를 발견했다. ‘말의 민주화’가 바로 그것이다.
민주화라는 말은 어딘가 거창하게 느껴진다. 왠지 평소와 다르게 행동해야 이룰 수 있을 것 같고, 특별하고 대단한 것을 추구해야만 올바르게 나아갈 수 있을 것 같다. 또 우리는 민주화라는 것이 어디에 필요할 생각하다보면 자연스레 정치나 경제처럼 크고 복잡한 것을 떠올리게 된다. 국가의 본질적인 작동 방법을 민주적으로 바꾸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민주화라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책에서 이오덕 선생님이 이야기하는 민주화는 그런 게 아니었다. 가장 시급한 것은 '우리말의 민주화'이다.
선생님은 말의 민주화가 되어야 생각의 민주화가 되고, 그렇게 해야 생활 속 민주화를 이루어낼 수 있다고 하셨다. 말이 민주화 되지 않고서는 정치나 경제도 민주화될 수 없다. 지금 우리말은 남의 땅에서 온 중국 글자 말과 일본말과 서양말에 짓눌려있다. 농민과 백성이 스스로 만들어 쓰던 쉽고 아름다운 말은 온데간데 없고, 관공서 직원과 벼슬아치들이 쓰던 어려운 말만 남았다. 책을 읽다 보니, 이것이 매우 큰 문제로 느껴진다.
민주적이지 않은 말은 이미 너무나 많다. 풀과 곤충, 산의 이름은 대개 한자로 되어있고, 글 법은 엉성하게 번역된 일본식을 따르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으로 ‘그녀’라는 삼인칭 표현이 있다. 그녀는 일본말 ‘카노조’를 그대로 옮긴 말이라고 한다. 애석하다. 남의 나라말을 마구잡이로 가져와 쓰고, 당연하게 여기는 것은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사실 우리말의 이런 모습은 우리 민족이 지금까지 얼마나 억압 받아왔고, 얼마나 반민주적인 방법의 교육을 강요당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가 되기도 한다. 학생인 나도 그런 표현을 습관처럼 쓰며 살고 있다. 내 주변에도 어려운 말로 쓴 글, 문학인처럼 고급스러운 비유를 사용한 글을 쓰는 친구들이 적지 않다. 어른들 또한 많이들 그럴 것이라고 본다. 아이나 어른 할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이 그런 글이 좋은 글이라고 믿고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식으로 글을 썼을 때 담을 수 없는 진실한 마음의 소리와 삶의 경험들이 아깝게 느껴진다. 나의 글쓰기 습관을 돌아보게 된다. 내가 대단하다고 믿고 썼던 글이 부끄럽기도 하다. 이제는 반민주적 글쓰기의 대물림을 끊어야 하지 않을까. 민주화라는 어쩌면 아주 사소한 곳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문제는 우리말을 민주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지배계층의 말이 아닌, 남의 나라말이 아닌, 외워서 쓴 말이 아닌, 순수한 우리말을 살리도록 해야 한다.
“우리 말을 살린다는 것은 바로 우리 말을 백성의 말로 한다는 것이고, 무리 말을 백성의 말로 한다는 것은 우리 사회를 백성의 사회로 만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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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멍님은 민주주의를 제도나 정치의 언어가 아닌, 우리가 매일 쓰는 ‘말’의 언어로 이야기해주셨어요. ‘말의 민주화’라는 다소 낯선 말이지만, 글을 다 읽고 나면 오히려 가장 가까운 이야기처럼 느껴져요. 영화 <말모이>에서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들과 학자들이 우리 민족의 뿌리를 지켜내기 위해 한글을 기록하고 지켜나간 것처럼, 결국 민주주의도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무심코 쓰는 말 한마디, 문장 하나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다는 걸 일깨워주는 글이었습니다. 멍 님의 좋은 글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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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정치적으로 매우 발전된 나라라고 생각한다. 국민들이 직접 5·18, 6월 민주항쟁 등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수많은 독재 정권에 맞서 싸우며 민주화를 이뤄냈다. 이런 점에서 한국은 전 세계적으로도 드문 민주주의의 성장을 이룬 사례다. 그럼에도 왜 우리는 여전히 민주주의의 결핍을 체감하고, 왜 12·3 내란 사태 같은 비극이 계속 반복되는 걸까?
나는 그 이유가 국민들의 수동적인 정치 참여, 그리고 한국 사회에 깊게 뿌리내린 갈등의 문화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12·3 사태가 실패로 돌아간 건 분명 국민들이 계엄이 불법적이고 반민주적이라는 걸 인지하고 능동적으로 반응했기 때문이다. 언론, 국회, 시민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목소리를 냈다. 이는 이미 한국 사회가 ‘포용적 정치 체제’를 어느 정도 기반으로 갖추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포용적 정치 체제’란 대런 애쓰모글루와 제임스 A. 로빈슨의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서 등장한 개념으로, 사회 구성원 모두가 정치에 참여하고 의사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권리를 동등하게 보장받는 체제를 뜻한다.)
하지만 12·3 계엄은 애초에 윤석열이라는, 반민주적인 성향이 예견된 인물을 우리가 뽑지 않았더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비극이었다. 국민들이 권력을 위임할 적임자를 고를 수 있는 역량을 갖췄더라면, 민주주의가 위협받을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 책임을 온전히 국민에게 돌릴 수는 없다. 문제는 정치 그 자체가 국민들을 정치의 ‘소비자’로 만들고, 그 이성적 판단을 흐리게 만든다는 데 있다. 한국의 정치는 국민들이 적절한 대표자를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케 하기 위해 성별, 지역, 세대 등 가장 협력해야 하는 주체들을 분열시키고 정쟁과 행정적 무능을 모이며 국민들이 정치 참여에 무기력함을 느끼게 만든다. 국민을 갈라놓고, 혼란과 무기력에 빠뜨리는 방식으로 스스로의 정당성을 유지시키려 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나아가야하는 방향성은 국민들이 권력에 저항하는 데 그치지 않고, 권력을 운용할 줄 아는 시민성을 갖추는 것이다. 민주주의가 투쟁의 장을 넘어선 다양한 목소리가 공존하는 공간으로 탈 바꿈 하는 것인데, 그러기 위해선 안정적인 정치 교육, 활발한 시민 참여, 그리고 무엇보다도 포용적 정치 체제가 필요하다. 포용적 정치 체제는 단순히 다름을 받아들이는데 데 그치지 않는다. 약자와 소수자의 자유와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고, 언론·노조·시민단체·이방인까지 다양한 주체들이 정치에 참여함으로써 견제와 균형을 이루는 자유민주주의의 실질적인 실현 방식이다. 정치인은 이러한 구조 안에서 포용의 가치를 외면할 수 없게 되고 다양한 견제 주체들의 요구를 충족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세력이 나타났을때 저항하는 것에서 머무는게 아니라, 애초에 그런 세력의 등장을 사전에 방지하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한국의 민주주의가 나아가야 하는 방향성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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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수제비 님은 ‘포용적 정치 체제’라는 개념을 바탕으로, 한국 민주주의가 앞으로 어디를 바라보아야 할지를 구체적으로 짚어주셨어요. 민주주의가 다양한 목소리가 공존하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 특히 공감이 갔던 것 같아요.
특히 “정치는 국민을 소비자로 만든다”는 대목은 한국 정치의 정확한 진단처럼 느껴졌어요. 양극화된 선택지만을 제공하며 서로를 혐오하는 우리의 정치가 시민을 점점 더 수동적으로 만들고, 그 결과로 포용은 점점 멀어지는 것이 우리 정치의 현실이죠. 그 안에서 우리가 포용하는 정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시민 개개인의 성장, 포용적 정치 체제 그리고 정치를 바라보는 태도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수제비님의 의견에 공감이 갔어요.
수제비님의 글을 읽으며 민주주의는 불의에 맞서 싸우는 능력만이 필요한 체제가 아니라, 돌보고 조율하고 함께 살아가는 능력이기도 하다는 민주주의의 본질을 다시금 떠올리게 됩니다. 좋은 글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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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두 일일 에디터 멍, 수제비 님의 글을 통해 민주주의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가져 봤어요. 한 분은 우리말이라는 일상적인 언어의 관점에서 민주주의의 미래를 이야기 해 주셨고, 또 한 분은 포용적 정치체제라는 구조적인 관점에서 민주주의가 나아갈 방향성에 대해 이야기 해 주셨어요. 이렇게 두 글의 출발점은 모두 다르지만, 저에게 두 글에서 가진 목표의식은 모두 같게 느껴졌어요. 민주주의는 단순한 제도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개인을 존중하며 함께 잘 살기 위한 우리 사회의 합의점이자 노력에서 시작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지요. 싸우기만 하는 정치, 복잡한 이념 속의 민주주의를 조금은 다르게 느껴본 시간이었어요.
둥지님은 이번 레터, 일일 에디터님들의 글을 읽으며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둥지님 안에서 민주주의란 무엇인지, 또 그 민주주의가 실현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옅게라도 생각이 드셨다면 정말 기쁠 것 같아요. 좋은 글 써주신 일일 에디터 멍, 수제비님에게 다시 한 번 감사드리며 오늘 레터 마치겠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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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 참.🫦
[새알의 참견]
에디터 키키🍥, 수달🦦, 영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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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주의의 과거·현재·미래 특집 레터를 마치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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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키의 참!🤚견 | 저는 요즘 같은 주제를 가지고 다른 사람들과 얘기할 기회가 많아졌는데요. 역시 사람이 많아지면 관점도 다양해진다고, 이번 공모전을 통해 새로운 관점에서의 민주주의를 생각해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우리말의 민주화도, 포용적 정치 체제도 저에게는 너무 새로운 얘기들이었거든요. 갇혀있던 담론을 깨고 새로운 틈이 많이 생긴 것 같아 이번 공모전을 열기 잘했다는 생각도 들어요! 주제가 민주주의인만큼 참여와 담론의 힘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더 많은 둥지님들과 소통하고 싶어요. 공모전이든, 소통창구든, 다른 방법이든 일방적인 전달이 아니라 좀 더 양방향적인 상호작용이 일어날 수 있도록 방학동안 머리를 싸매고 고민해볼게요. 오늘 레터에 관한 내용도, 민주주의에 대한 생각도, 혹은 그냥 민주주의 특집에 대한 얘기도 소통창구를 통해 마구 들려주세요! 둥지님들이 생각하는 민주주의와 미래에 대해 더 들어보고 싶어요. 무더운 여름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모쪼록 건강 챙기시길 바라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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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달의 참!🫲견 | 에디터 이슈의 말처럼, 민주주의는 우리와 가까이 맞닿아있는 개념임에도 불구하고 학생인 저에게는 늘 어렵고 추상적인 개념이었던 것 같아요. 왠지 투표권이 있는 어른들의 이야기로만 느껴졌거든요. 하지만 계엄 이후 우리도 함께 민주주의에 대해 목소리를 내야한다는 것을 온몸으로 실감했어요. 그리고 세 차례에 걸쳐 레터를 발행하기 시작했지요. 특집 레터가 마무리된 지금, 여전히 저는 민주주의를 하나의 언어로 완벽히 정의하기 어려워요. 하지만 첫 특집 레터 원고를 쓰기 전 품었던 ‘민주시민이 무엇이고 어떻게 될 수 있을까?’에 대한 물음은 조금씩 답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에게 이번 특집 레터는 민주시민이 되기 위한 힌트들을 하나하나 모으는 과정이었으니까요. 피 흘리며 거리로 나가 민주주의를 지켜낸 그때의 어른들을 잊지 않는 것, 혐오의 시대에서도 오류가능성을 인지하며 타인과 대화하는 것, 일상 속 언어를 되짚어보는 것, 포용적인 정치를 함께 만들어가는 것 등… 더 나은 민주주의를 위해 애쓰는 어른이 되고 싶어요. 그 여정의 시작을 새알 에디터들과, 더 나아가 둥지님들과 함께 할 수 있어 기뻤습니다. 민주주의 레터는 이렇게 끝을 맺지만, 앞으로도 계속해서 민주주의 사회 속 좋은 어른을 고민하고 나누는 새알이 될게요! 둥지님들의 지속적인 사랑 부탁드립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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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영의 참!🤚견 | 이슈도 본문에서 언급해줬지만 우리가 살아가면서 너무 당연하게, 또 익숙하게 느끼는 것들을 성찰하는 일은 무척 중요한 것 같아요.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가치라고 할지라도 낡아빠진 관습이 되기 쉽고, 죽어있는 진리로만 남아버리게 될 수 있으니 말이에요. 이번에 새알이 어쩌면 모두가 이미 잘 알고 있을지도 모르는 민주주의라는 주제를 특집으로까지 가져왔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었어요. (특히 제가 특집 레터를 발행해야한다고 강하게 주장했었는데요.ㅎㅎ) 근래에 우리가 ‘잘 안다고 생각하는 마음’을 경계해야 할 필요가 있겠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거든요.
여러분은 어떤 것에 대해 ‘잘 안다’고 이야기하실 수 있나요? 그동안 저는 민주주의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스스로 자부해왔던 것 같아요. 그렇게 학교 수업에서 민주주의에 대해 배우고, 학생 자치 활동을 하며 실제로 민주주의의 현장을 경험해보기도 했으니 나름 충분히 알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런데 이론이 아닌 실제 상황에서 민주주의의 위기를 겪고 나니, 그러한 저의 생각들이 무척 큰 오만이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어요. 그러면서 제 안에 여러 질문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죠. ‘진짜 안다는 것이 무엇일까?’, ‘지금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가 갖고 있는 문제점들은 뭐지?’, ‘앞으로의 민주주의가 어떻게 나아가면 좋을까?’와 같은 것들이요. 그런 질문들을 여러분과 함께 나눠보고 싶다는 작은 열망에서 시작된 이번 특집 레터가 부디 잘 가닿았길 바라요.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우리가 시대에 알맞는 질문들을 함께 고민하고, 또 나누는 사이로 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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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지님! 오늘의 새알, 어땠나요? 많관부 🪺
[많은 관점 부탁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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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질문 💭
둥지님이 꿈꾸는 민주주의의 모습은 무엇인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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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알은 언제나 둥지님들과의 소통을 기다립니다~ 우리 같이 얘기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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